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친구가 있다. 나보다 3∼4살은 더 먹은 친구.
바보같이 둔하고 직선적이지만, 그 점이 더 멋진 녀석이라 생각한다.
내 평생의 3분의 1을 넘게 사귀어온 녀석이기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처음에 난 이 녀석을 '라이벌', 이라든가 '호적수' 라든지... 뭐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워낙 비슷한 게 많았고... 그래, 솔직히 나보다 위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 중 하나다.

 그런 녀석이 드디어 사랑을 했다.
매일같이 만나면 사랑타령만 하더라. 아∼아, 눈꼴셨지.
...그래도 보기 좋았다.
그 녀석이 펼쳐놓는 러브스토리는 말 그대로 멜로드라마였다.
녀석을 알고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 녀석이 이런 식으로 들떠서 이야기하는 녀석인 줄은 처음 알았다. 아, 그래. 솔직히 말하겠다.
부러웠다. 이렇게나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며 살아가고, 그렇게 사랑하는 이 녀석이 부러웠다.
그래, 어쩌면 동경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녀석이 갑자기 씁쓸한 얼굴을 했다.
사정이 있어서 여자친구를 못 만난다나... 뭐 그런 이유다.
솔직히 걱정됐다. 하루가 멀다고 만나는 커플도 수시로 깨지건만 몇 개월이나...
하지만 오히려 웃으면서 안심시키는 쪽은 그 녀석이더군. 역시 이 녀석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하긴, 이 녀석이 그 동안 해온 것이 있는데. 설마 그렇게 허망하겠어?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난다.
그 녀석의 표정이 우울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처음에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은근히 돌려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설마'가 확신이 되는 데에는 그다지 걸리지도 않더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겨우겨우 웃으면서 그 녀석은 아직 희망은 있다고 하더라.
이 순간만큼은 그 동안 빌지도 않았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랬다.

현실은 냉혹하더라. 결국 그 녀석은 헤어졌다. 정말 말도 안돼.
이렇게 말해봐야 어린애 투정이겠지. ...정말 어설픈 위로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녀석은 고맙다고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젠장.

그 녀석이 화를 냈다.
내가 이 녀석을 알아온 시절을 전부 뒤져봐도 이 녀석이 이 정도로 화를 낸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녀석답지 않은 난폭한 말투에 약간은 질려버려서 일단 말리자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내가 들은 이야기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 지금도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다.
여자친구와 갈등이 생겨 '헤어진'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를 '뺏긴' 것이라고.

여기서 잠깐 말을 돌리겠다.
내가 이 녀석과 사귄 것은 어떤 그룹에서였다.
그 사람들은 아직까지 사귀고 있다.
지금은 각지로 흩어져 있지만... 메신저에는 서로를 등록해놓고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딱히 서로간에 기대려 하는 일은 적지만 서로간에 정이 부족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친구를 알아온 만큼, 이 그룹의 사람들과 알아 왔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가까워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내가 이 그룹에 속해 있는 것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안에 속한 사람들 전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현실의 친구들 못지 않게...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서로를 믿고 아끼고 보듬어주는 친구들이라 생각한다.
서로간에 티격태격도 많이 했지만 그건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서로간에 다투었던 사람들은 그 결과 서로를 더 믿고 신뢰하게 되었다.
현재 길드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이 길드는 여전히 그 그룹의 영향 아래이기에 길드에 속한 것이고 그 그룹의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정말 미련 없이 떠날지도 모른다. 내가 즐기는 게임 자체마저도.
...기분 나쁜 방향으로 말이 미끄러져 버렸는데, 아무튼 나는 그 정도로 이 그룹의 사람들을 좋아한다.
한가지 서운한 점이라면, 그렇게나 오래 지냈음에도... 이 중에서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는 점이다. 단지 내 생각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중에 최근 한 사람이 자신에게 있어 내가 특별한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알려왔다.
진심으로... 기쁘고 반가웠다. 그래,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그런 것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군대에 있기에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즐기는 일은 힘들겠지만,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그것은 올해 들어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였다. 분명히.

내가 왜 이 말을 어째서 하는가 라고 물어볼 지도 모른다.
아마 이 글을 볼지도 모르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이... 그 녀석의 여자친구를 빼앗은 거라고 한다.
믿을 수 없어. 이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째서? 믿을 수 없어. 대체 무엇이 부족했는데? 왜? 아니, 거짓말이지?
난 네가 더... 더 이성적이고 좋은 결론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눈앞에 있다면 어깨를 움켜쥐고 소리칠지도 몰라.
왜 그랬어! 정말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이 바보야!
정말... 울면서 소리칠지도 몰라.
...겨우 이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바보 같긴. 정말 바보다. 난.

다음에 생각난 것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사람을 욕하고 있다.
나도... 그 사람을 욕해야 하는 거지? 그런 거지?
확실히 잘못 한 거니까. 너무 큰 잘못 이니까.
그 동안 함께 해 온 날을 봐서라도... 어떻게...

....그런데. 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기에. 그때, 기뻤었고... 그래서...
그래서 난 이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의 안이함과 한심함에... 미안.
정말 군인 같지도 않고 남자답지도 않고, 험악한 면상인 주제에... 약해 빠져서.
슬프다. 눈물이 날 정도로. 정말 슬프다. 주변의 상황에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호전시킬 수 있는... 그런 힘도 영향력도 없다는 것이.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좋게 끝낼 수 있는 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서... 난 정말 조금, 아주 약간 울어버렸다. 내가 믿고 있던, 작고 단란한 세계에 균열이 가버린 것에 대해.
인터넷 가족...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지.
우린 그런 가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그룹이었던 것 같아. 그치?
정말 미안해. 나는... 이 그룹 안의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한심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조차
그 사람이 내 글에 다른 글보다 훨씬 더 상처받을까봐 두렵다.

 ...나는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이 무서워서, 그래서 누군가 내 곁에서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어설픈 중립만 주장하다가 결국에는 아무 것도 못하는 녀석일지도 몰라.
어쩌면... 어느 한 편에 섰다가 다른 편에게 미운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녀석일지도...
그러니까 당신이 위선자라 불리는 거야 라고 누군가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난 이 글을 못 올릴지도 몰라.
부스에서 작성하고 있는 지금, 디스켓으로 옮기는 잠시 후, 디스켓에서 다른 컴퓨터로 옮겨지는 그 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옮기는 그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결국 옮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이 글을 올린다면... 단 한 문장도, 한 글자도 수정하지도, 지우지도 않고 올리겠다.
많은 사람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어떤 주장을 담고 이야기하는 것도, 무슨 의지를 담고 쓴 것도 아닌...
단지 이 일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사람과 함께 해왔던... 그런 사람의 심정을 그대로 옮긴 글일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단 둘이면 충분하다.
그래.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그 두 사람. 나 마지막으로 올리기 전에 두 사람에게 약간씩만 말을 해보고 싶어. 결국 바로 위에 써 놓았던 글을 깨버리게 되네. ...결국 약해빠진 녀석이란 거겠지. 나도.

 우선 한 명에게. 도대체 왜 그런거야?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었던거야? 내가 한쪽 말만 듣고 너무 섣불리 판단한 것일지도 몰라. 그것에 서운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고.

 하지만 말야...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상처를 준 것은 사실. 그것이 너의 행동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도 사실. 그로 인해... 이미 여러 사람이 강조했지만 널 믿었고... 그리고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었던 한 사람의 가슴에 정말 커다란 상처를 입혀버린 것도 사실이야. 어떻게 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하지도 못하겠고.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해. 자신의 행동에 후회를 한다면, 그 것을 다른 사람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책임을 져야만 할거야. 그게... 회피가 되서는 안돼. 절대 안된다 생각해. 피하지마. 그것만은 안돼. 알고 있지?

 또 다른 한 명에게.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부분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해. 그 점이 나를 상처 입힐 수도 있어. 그래... 너의 아픔, 머리로는 알지만 이해하진 못하겠지. 여태까지 버텨온 것 만으로도 넌 강해. ...그래. 넌 정말 강해. 하지만... 오늘 너의 모습을 보면서... 전혀 내가 모르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슬프다는 생각을 했어. 왜 그렇게 비슷하던 너와... 그렇게 공감대를 쌓은 너가 분노하고 있는데 나는 그에 응해주지 못하는 걸까 하면서. 그래서 생각한 것은 내가 그때 화를 내서는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결론내렸어. 제멋대로지? 하지만 말야... 너는 정말 남에게 악의를 퍼붓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내 성급한... 이기적인 말일까? 너라는 친구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던 걸까? 하지만... 미안해. 난 이 이상 내딛는 한발짝이 너무 힘들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가만히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너에게 한 두마디를 건네는 정도겠지. 딱 하나만 말할게. '악의'를 품고 행동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아. 정말 '악당'이라 할만한 사람은 손에 꼽는다고. 갑작스럽게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마. 이건 정말... 너가 가장 하지 않던 일이잖아? 가슴을 식히고...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적인 생각으로 떠올려봐. 주위의 목소리는 잠시 귀를 닫아두고... 하아, 미안. 오히려 거슬리기만 할지도 모르겠다. 괜히 썼을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난 근시일 내로...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오길 바래. 그건, 틀림없는 너의 후회 없는 결정이겠지. 그래. 아마 그럴거야.

by 카마엘 | 2006/02/10 20:59 | 기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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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2/11 02: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브키 at 2006/02/11 12:03
그 친구라는 분...많이 힘드시겠지만...
그 참혹한 아픔을 딛고 일어섰을때...그리고 시간이 지났을때...
더 좋은 여자를 만나 그때보다 더 좋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될겁니다.

반드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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